이낙연 총리 초청 제5회 한미동맹포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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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축사 전문
2019. 7. 5. (금) 11:40-
제5회 한미동맹포럼 오찬행사 축사 (국방 컨벤션)
존경하는 한미동맹재단 정승조 회장님과 구성원 여러분, 저를 한미동맹포럼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미동맹재단의 동반자 주한미군전우회 회원 여러분, 특히 영상축사를 보내주신 월터 샤프 회장님 반갑습니다.
함께해 주신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님, 박한기 합참의장님, 이동섭 국회의원님, 박재민 국방차관님,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님, 마이클 빌스 미8군사령관님을 비롯한 한미 양국의 귀빈 여러분, 고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주시는 한미 양국 장병 여러분께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는 한미동맹 66주년입니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강산이 6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한미동맹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미동맹을 지켜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 동안 한국전쟁이 계속됐습니다. 전투병력과 의료진 195만 명이 유엔의 깃발 아래 22개국에서 와주셨습니다. 그것은 유엔 역사상 최초의 파병이었습니다.
그 주력은 미군이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178만 명의 미군이 참전했습니다. 그 가운데 3만7천 명이 전사 또는 실종했고, 약 10만 명이 부상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멎었습니다. 그해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됐고, 이듬해 11월 18일 그 조약이 발효됐습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저는 한국전쟁 기간에 태어났습니다. 대통령과 제가 걷기 시작했을 때, 한미동맹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국 해병대는 흥남철수작전을 펴면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북한 피난민을 태워 남녘으로 수송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녘에 자리 잡으신 북한 피난민 가운데 한 부부 사이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태어나셨습니다.
저는 입대 후 카투사로 배속돼 한미동맹을 최일선에서 경험했습니다. 저는 일병부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할 때까지 29개월 동안 미8군 제21 수송중대에서 주한미군과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것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는 이태원에 있습니다. 당시 이태원에서 국방부가 있는 이곳 삼각지를 쳐다본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삼각지에는 너무 많은 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 들어오자마자 계속 제 시선이 저쪽 음식이 진열돼 있는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카투사로 일하던 시절에 원투원병원 옆에 있는 그 식당에서 늘 저런 곳에서 뭘 골라 먹을까를 고민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소년이 된 뒤로 제 상체를 벗었을 때 갈비뼈가 보이지 않은 것은 카투사로 근무할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걸 보았던 제 친구들은 저에게 장기근무를 권유했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를 넘어 외교와 경제에서도 한국을 지원했습니다. 한미동맹은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까지 대한민국이 성취하고 누려온 평화와 번영, 자유와 민주주의는 한미동맹에 힘입은 바 큽니다. 그 점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극히 최근까지도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 장병 예순두 명이 희생되셨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그런 한국이 지금은 1인당 소득 3만3천 달러를 자랑하는 세계 11위의 경제강국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한국 국민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저항하고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경제성장과 교육향상으로 한국 국민의 민주의식이 커진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교육향상,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는 미국의 지원이나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성취는 미국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올해 5월 한국기업이 31억 달러를 투자한 미국 루이지애나 화학공장의 준공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메시지에서 “이 투자는 미국의 승리이며, 한국의 승리, 우리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성장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한국의 성공은 바로 미국의 성공”이라고 저는 그 준공식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씀하신 미국의 승리이자 한국의 승리, 제가 말씀드린 한국의 성공이자 미국의 성공은 한미 양국과 양국민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제가 그렇듯이, 여러분도 그러한 자부심을 갖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반도는 새로운 모색에 나섰습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70년의 증오와 대립을 딛고,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게 됐습니다. 한미 양국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판문점에서는 한반도 분단 이후 최초의 역사적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판문점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됐고, 1976년에는 북한군의 도끼에 미군 2명이 살해된 곳입니다. 그런 판문점에서 한미 정상이 평상복 차림으로 최전방의 감시초소를 함께 방문하셨습니다. 무장군인도 무장경호도 없는 군사분계선에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나셨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으셨습니다.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났습니다.
그 모든 일이 사상 최초였습니다. 지금 남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분단 이후의 역사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의 역사는 바뀌어도, 한미동맹의 기본역할은 바뀌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미동맹이 이제까지 한국의 평화를 지키고 번영의 토대를 놓았다면, 이제부터는 평화를 뿌리내리고 번영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환기에 한미동맹의 일익을 담당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위대한 동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의 성취에서도 한미동맹은 ‘위대한 동맹’이었고, 이제부터의 공헌으로도 한미동맹은 ‘위대한 동맹’일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한미동맹의 일부를 맡은 것은 크나큰 영광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한미동맹을 한국정부와 국민은 앞으로도 소중히 발전시켜 갈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한국 국민과 정부는 워싱턴 DC에 한국전쟁 참전 미국 전사실종자 3만7천 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2022년까지 건립하려 합니다. 한국전쟁 중에 전사 또는 실종하신 미군 유해의 발굴과 송환을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북한과도 협력하겠습니다. 한미 양국의 여러 현안들도 합리적이고 호혜적으로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모든 과정에 한국과 미국은 함께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구호 그대로 We Go Together!
제가 청춘의 한 기간을 카투사로서 주한미군과 함께 땀 흘리며 일했던 것은 저의 크나큰 자랑이며 자산입니다. 카투사는 주한미군전우회의 일부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개인으로서 당연히 주한미군전우회의 일원입니다. 함께 갑시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2019. 7. 5. (금) 11:40-
제5회 한미동맹포럼 오찬행사 축사 (국방 컨벤션)
존경하는 한미동맹재단 정승조 회장님과 구성원 여러분, 저를 한미동맹포럼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미동맹재단의 동반자 주한미군전우회 회원 여러분, 특히 영상축사를 보내주신 월터 샤프 회장님 반갑습니다.
함께해 주신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님, 박한기 합참의장님, 이동섭 국회의원님, 박재민 국방차관님,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님, 마이클 빌스 미8군사령관님을 비롯한 한미 양국의 귀빈 여러분, 고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주시는 한미 양국 장병 여러분께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는 한미동맹 66주년입니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강산이 6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한미동맹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미동맹을 지켜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 동안 한국전쟁이 계속됐습니다. 전투병력과 의료진 195만 명이 유엔의 깃발 아래 22개국에서 와주셨습니다. 그것은 유엔 역사상 최초의 파병이었습니다.
그 주력은 미군이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178만 명의 미군이 참전했습니다. 그 가운데 3만7천 명이 전사 또는 실종했고, 약 10만 명이 부상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멎었습니다. 그해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됐고, 이듬해 11월 18일 그 조약이 발효됐습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저는 한국전쟁 기간에 태어났습니다. 대통령과 제가 걷기 시작했을 때, 한미동맹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국 해병대는 흥남철수작전을 펴면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북한 피난민을 태워 남녘으로 수송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녘에 자리 잡으신 북한 피난민 가운데 한 부부 사이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태어나셨습니다.
저는 입대 후 카투사로 배속돼 한미동맹을 최일선에서 경험했습니다. 저는 일병부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할 때까지 29개월 동안 미8군 제21 수송중대에서 주한미군과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것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는 이태원에 있습니다. 당시 이태원에서 국방부가 있는 이곳 삼각지를 쳐다본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삼각지에는 너무 많은 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 들어오자마자 계속 제 시선이 저쪽 음식이 진열돼 있는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카투사로 일하던 시절에 원투원병원 옆에 있는 그 식당에서 늘 저런 곳에서 뭘 골라 먹을까를 고민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소년이 된 뒤로 제 상체를 벗었을 때 갈비뼈가 보이지 않은 것은 카투사로 근무할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걸 보았던 제 친구들은 저에게 장기근무를 권유했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를 넘어 외교와 경제에서도 한국을 지원했습니다. 한미동맹은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까지 대한민국이 성취하고 누려온 평화와 번영, 자유와 민주주의는 한미동맹에 힘입은 바 큽니다. 그 점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극히 최근까지도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 장병 예순두 명이 희생되셨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그런 한국이 지금은 1인당 소득 3만3천 달러를 자랑하는 세계 11위의 경제강국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한국 국민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저항하고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경제성장과 교육향상으로 한국 국민의 민주의식이 커진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교육향상,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는 미국의 지원이나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성취는 미국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올해 5월 한국기업이 31억 달러를 투자한 미국 루이지애나 화학공장의 준공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메시지에서